I
그려놓은 건 많이 봤는데, 막상 직접 그리는거 보는건 처음이네요..
네에 전공이 그쪽이 아니면 그럴 수 있죠.
계속 그리면 힘드니깐, 사진을 먼저 찍고,
다시 자리 잡고 그리고 그러려구요.
원래 보영씨가 그리하는 건가요? 남들도 다?
그거야 모르죠. 결국은 반 추상작이니깐.
전 소질이 없어서.
보영이의 모델이 되게 된건 순전 우연이다.
난 주차 알바를 하고 있었는데,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내가 딱이라고.
시급이 자그마치 세배래길래, 덥석 물었다.
언제 어디로 가면 되죠?
괜찮으시면 이번 토요일 부터 해요,
나체는 아니고, 좀 꽉 달라 붙눈 옷이면
좋겠고 완성할때만 웃통은 벗은채.
II
우와 우리 나라에도 이런 저택이 있군요?
아버지가 미술가 하실때 땅을 사서 만들었대요.
아버지가 만든게 처음에는 그냥 순수하게 만든건데,
부동산 투기나 마찬가지가 됐어요.
뭐 그때 사람들 다 비슷하죠.
보영이는 아버지를 보통 사람에 비유한 것은
못 마땅하다는 투였다.
제 작업실로 가요. 물론 작업실도 크니까..
이젤 앞에 서볼래요? 이제?
아니오. 캔버스 아니지 도화지 놓는곳 대강 자리를 잡고요.
난 일단 집이 워낙 으리으리 해서 주눅이 잔뜩 들어 있었다.
대강 이 정도 구도로 그릴 거니깐 주변물 보고 기억해 놔요.
홍차하고, 국화차 있는데...
아무거나... 홍차 마실게요.
보영이가 홍차를 내주는데,
쌉씨하니 떫은게, 왠지 비싼 거 같았다.
아버지 동생은 집에 있고, 어머니는 스위스에 여행을.
시원한데서 놀아야 한다고.
네에.
오늘은 조명 넣고 사진 돌려 가면 찍고 가시면 될거 같아요.
이렇게 디지털로 돌려서 찍구,
밤에 드는 건 아날로그로 인화...
인화실 멋있죠? 마치 살인영화에나 나올 법한.
내일두 오면 되는 거지요?
네. 같은 시각
택시 부를 게요.
모범 부르세요. 잘 안 들어 오니까.
나중에 택시비는 따로 말씀 하시면.
언니.
어어 지은아. 모해?
우와 근사하게 생겼네. 지저분한거 빼구.
야! 농담이예요.
저 지금 나가는데 태워다 드릴까요?
아니예요 괜히 깨끗한 차 더럽힐라.
에이 좀 스럽긴. 타세여. 이래뵈도...
가와사끼. 디자이너 프로토 버전.
타요. 헉.
아 좋다. 이건 속도 얼마나 나와요?
400 정도? 흐아...
치하철역 도착... 내일도 오시나요? 네.
내일은 차로 모시지요...
III
오늘은 율동 춤추면서 그려볼게요,
춤을 췄으면 싶은데, 영화 트로이 있죠?
아킬레스랑 1:1 로 싸우는 장면이랑 300 포즈를 잡아 주세요.
음악은 월광을 틀어보죠.
아니다 바흐로 해봐요.
네 화면 보구 연습하세요.
미리 연습해 오라면 해오면 더 나을 텐데.
저랑 같이 보면서 캐치할 거예요.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세시간여.
좀 쉬었다 할까요?
수분 흡수에는 자몽. 여기에는 정말 물밖에 안 들어 있음.
전 무슨 그림이 나오는 건지 전혀 모르겠네요.
신경쓰지 마세요 그건 제가 전공. 조명을 좀 확 밝개 하고 해봐요.
역시 낫군요.
나를 태워 준다는데, 거실에서 아버님과 만났다.
태가 좋군
지은이 너 운전 조심하고... 네에 네에~
이건 무슨 차예요? 디아블로라는 차예요.
아 게임은 해밨죠, 후후후.
사람들이 많이 쳐다봐도 산경 끄세요.
수란씨랑 저 보는 거 아니니깐. 차구경 하는거.
아 그래도 좀 복장이 좀.... 압박적이네요.
홍대 커피점 가볼래요? 아녜요. 잼나실텐데.
그럼 다음주 토요일에 뵈요내가 언니보다 그림 잘 그린다구요, 쳇
IV
L지은씨 전공은 모예요? 레이서?
공식적으로는 재료공학 헉! 이예요.
아흐 정말 안 어울린다.
제가 저녁 사까요? 됐어요
아 그냥 친구들한테 자랑 좀 할라고...
그럼 칭구분 중에 누가 갑빠가 있나 볼까요?
돼지 갈비에 맥주라 청국장 공돌이가 맞구만..
카카오 부를래? 함 운전대 잡아볼래
언제 타보리... 그나저나 징그럽게 이쁘네
보영이가 창문을 열고 있어서 모쓱하게 손인사.
V
자 내일이면 끝나겠다. 움직이는 느낌의 살아있는
유화를 그리는 게 목표였는데
완전 완벽하지는 않아도, 남앞에 내 놓아도 될듯
지은아, 아빠 와서 함 보세요.
우와 보영이 수준이 점점 높아지네.
죄송하지만 저도 한번 봐도 될까요.
그건 안 되요.오늘은 마이바흐에 기사 붙여 줄게요.
지은이랑 맥주한잔 해요.
수고 많으셨어요.
그럼 수고 많으셨습니다.
뭔가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창밖으로 작은 새 소리가 지저귀고 있었다.
저 아저씨 아니 이 저택 이름이 뭐예요?
해바라기 저택.
근데 왜 성이 달라요? 한명은 P 한명은 L.
난 그건 말 못 해주겠고.
지은이와 맥주를 마신다. 둘다 안주를 좋아하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하고 있는데,
인생이 뭔거 같냔다. 무언가를 인지하며, 죽어 가는 것?
아 근데, 몇살이예요? 27이요.
아 난 26 언니는 28 콩콩콩이구나.
씨로 부르는 거 괜찮죠? 물론 편할 때로.
예전에는 친구들과 비를 맞으며 막 뛰어서
떡볶이 집에 몰려 들어도 까르르 웃고 했는데,
이제는 만날 친구도 드물고 다 바쁘니깐
지은이의 눈망울에 떨어지는 눈물은 투명하더니,
자꾸 부비니 엉망이 되어 버렸다.
요 옆에 음악 틀어주고 커피 파는데 있는데 갈래요?
소파 테이블이 여섯개라 호젓해요.
그래요. 맥주도 있죠? 네에.
VI
울 언니는 친 어머니 돌아가신 다음 웃어본 적이 없어요.
늘 차분하고 고분고분한 표정으로 아버지가 시키는 것만.
대개 그러지 않나요?
대개 그렇다고 해도 10년이니 문제죠.
그냥 학교에 가서 수업듣고 돌아와서 책이나 영화 보는거.
그리고 이거 저거 그려요.
누구나 그럴 텐데. 여튼 좀 심하대두요. 해서 제가 좀 밖으로 끝어내 볼 생각인데,
도와 주실수 있을 까요? 모델할 때 언니가 딱히 싫어하지는 않는 거 같은데.
생각해 볼게요. 가장 무난한 대답이다.
'아 내 알바비'
내일 용산에 좀 가요. 드론을 하나 사려구요.
이 집에두 방범 CCTV 있는데....
그냥 하자는 대로 해봐요. 좋아할 거예요.
좋아하면 지은씨가 돈내고, 시큰둥하면 지은씨가 돈 두배 내고.
제가 조실부모하고..
그럼 제가 내일 사 들고 갈게요. 일단 인터넷 평 좀 읽어 보고.
저도 공돌녀인데... 그렇게 하지요.
점심은 요리사님이... 아니 제가 하죠.
XII
저 수린인데요. 창 사이즈에 맞히긴 아슬아슬하네요.
오늘은 일하는 날인데요. 지은이랑 일해요?
아 죄송합니다. 생각이 짧았습니다.
참 집중해야 하는데, 오늘은 완전 글렀네.
현관에서 소리가 낫다.나 먹을 거 사왔는데...
지은아. 네 멋대로 하면 어떻하니? 다 일정이 있는데.
미안 내가 수린씨 졸라서..
옷 갈아 입고 분위기 가라 앚히고, 일하는 걸로 해요.
이게 뭐 그렇게 쉬운 작업인 줄 알아요?
매너도 없이.
그럼 내일 뵈요.
그리고 너 지은이, 맨날 봐줬더니. 말자.
정말 칼날 같이 정색을 하는데, 지은이가 뚝뚝 눈물을 흘렸다.
그럼 내일.....
가긴 어딜 가요. 지은이가 음식 만들어 준다는 건 먹구 가야지.
평생 요리한번도 안해 보구서 뭘 한다고.
치즈 콜라 치즈스틱 오븐스파게티... 아빠 나와서 드세요.
여튼 묘한 분위기.
저어 샀으면 날리는 법을 가르쳐 줘야 할거 아녜요.
거어참. 꼭 두번 말하게. 야 지은아 니가 열심히 배워. 넌 공돌녀 아니니? 가끔 써먹을 때두 있어야지.
보영이는 현관에 파라솔하고 파라솔 테이블을 펴게 한뒤,
수박쥬스를 마시고 있다.
언니 걱정마 확실하게 배워서 가르쳐 줄게.
너 나무 다치면 죽어. 야아 화질 끝내주게 좋다. 소리도 나나?
응. 봐봐 내가 임씨 아저씨 근처로 갈게... 말해봐.
아저씨 저 보영인데요. 어디 있게요?
못 찾겠어요 아가씨.
정말 오랜만에 웃었다. 10년만에.
그럼 전 내일 뵐게요. 날씨가 참 좋아요. 바람도 마치 쓰나미같은 산들 바람.
VIII
이제 웃통 좀 벗고 제가 조명으로 땀좀 낼 게요.
바지는 그냥 입구 계세요.
맞아 이렇게 나와야 되는 거야... ^^ 잠시 꼼짝마세요.
그림 약간 다듬고, 디지탈 아날로그로 찍는다.
지은아 와서 조명 좀 잡아봐.
그래 이렇게 보이면 되는거야 나중에 전시할 때.
저 박 선생님 다 끝났어요. 와서 가져가 주시면 고맙겠는데요.
저는 이제 끝난 거죠?
네에. 그냥 한번만 보여 주시면. 그건 안 되구요.
전 이쪽에는 일자무식이라서, 흔들흔들 검지 손가락.
저희 집사 분한테 계산 할거 받아 가시면 되요.
드론은 제가 사서 쓸게요. 재미난 장난감이예요.
지은씨 근데 그 미술관이 어디예요?
죄송요. 수린씨는 출입이 안 되요.
경매장도 아니고 선생님들한테 평가 받는 자리.
VI
일주일 후.
지은아 이제 준비 다 됐어. 가자.
아니 내가 안가. 수린씨가 갈꺼야.
그래.
바다가 낫겠죠? 네에. 노오란 노을이 지는 바다로 가요.
'창작 > 현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랗고 노란 물보라 (0) | 2021.07.31 |
---|---|
울동네 명재 이야기 (0) | 2021.07.29 |
리어커살인 (0) | 2021.07.24 |
시작도 없었던 이별 (0) | 2021.07.15 |
잃어버린 정수기 (0) | 2021.07.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