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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현재

옆집 여자와 냉면을 먹다.

by MDabsurd 2021. 8. 23.

I

 

"시원해 완전."

"그르게 보일러 쎄게 틀었네.

"메뉴판이.."

"보긴 뭘봐. 비냉, 물냉 중에 골라."

"난 비냉, 오빠 비냉? 그럼 나 물냉. 두개 시켜서 노나 먹자"

"그건 또 왜? 비냉은 뺏어 먹어야 제맛. 아 글구. 이렇게 노나 먹어야 부부 같지."

오손도손 냉면을 먹고 가게를 벗어나 차를 끌고 가는 곳은,

 

처가 수목장 모아둔 곳.

재작년에 처제가 갔으니, 이제 3년째.

발레 연습을 하다가 삐끗 해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다보니

백혈병 검진을 받고, 오래지 않아 저 세상으로 갔다.

 

몇년새 가족들이 자꾸 상을 당하니,

와이프와 나도 약간은 소원해 졌다고 할까?

 

아직 애도 가지지 못했다.

 

분위기도 바꿀 겸, 해외로 놀러 갈라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쉽지가 않다.

벌써 내가 마흔 지은이가 서른 여덟.

뭐 많다고 하기는 그런데, 

스물 다섯에 결혼하고 보니, 

15년을 한창 때 둘이서 밍밍하게 살아온 거다.

 

그러는 찰나,생활의 큰 변화가 일어났다.

옆집(복도식아파트)에 보영이가 이사를 왔다.

내게 지은이를 소개시켜 준 장본인..

"이사온 거야?"

"응 여기 사는지 몰랐는데."

"넌 어쩜 그대루니. 지은이는 하루가 다르게 늙든데."

"일른다?"

"지은이 방방곡곡 출장녀. 오늘도."

"음큼하게 들리네. 또 일러야지?"

"난 밥 없어서 뭐 시켜 먹을까 고민 중인데, 같이 먹을까?"

"아니 난 했는데. 냉면. 난 해 먹는게 좋아. 들어가 있어봐 내가 배달해 줄게."

"그래. 기대 되네."

"반, 반의반? 어떻게 잘라줘?"

"난 반."

금방 벨이 울렸다. "냉면 배달 왔는데요."

문을 열고 쟁반을 받아 들었다.

비냉 꽤 매우니까, 쿨피스 먹으면서 먹어.

그럼 나두 먹으러. 설거지 같은 거 하지 말고 그냥 줘.

인조이~

 

II 

"지은아. 나 보영이. 어 정말 오랜만."

"그러네. 왠일이니? 누구 죽었니?"

"에이... 나 이사 했는데, 딱 와봤더니, 너희집 바로옆."

"어 반갑다. 나 수린이 오빠랑 살구 있는데..."

"어 봤어. 수린이 오빠. 밥 시간 됐는데, 어슬렁 거리길래.. 냉면 해줬어."

"냉면이라. 울 수린씨 비냉 좋아해. 울면서 먹어."

"그래 그럼 지금 울었겠군. 흐흐흐"

"보영아 나 바빠. 틈틈이 울 오빠랑 좀 놀아줘. 내가 출장이 많아서."

"어?"

"그이 외로움 많이 타는데. 맨날 심심할 껄?"

"어 그래 종종 문 두들겨 보지 살아 있나."

"그래 그럼. 나 이만..." 수화기 멀리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띨롱" "네. 열렸어요."

"맛있게 맵네요. 쿨피스 없으면 죽을 뻔."

"그래요. 저 요리 잘 하죠?"

"아 네. 아무 맛있었어요. 다음에 제가 밖에서 한번 살게요."

"아 참. 지은이한테 전화 했어요. 이사 왔다구."

"아 네. 그럼."

 

그날밤은 수린이도 보영이도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며,

옛날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III 

 

혹시나 새벽에라도 돌아왔으려나, 어림 반푼어치다.

동네나 한바퀴 돌려고 걸어 운동복 차림으로 

걸어 나가려는데, 

"저... 자갸."

"지은아" 휙돌아 봤더니, 보영이의 성대 모사.

"하하하. 여즉 통하는 군."

"깜짝 놀랬잖아. 근데. 넌 회사 안가?"

"오빠랑 똑같겠지 모. 백수가 백조 놀리게?"

"아냐. 난 재!택!근!무!"

"지은이보구 돈 벌어 오래 놓구 노는 거자나. 척이면착"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잠시 걷는다.

 

"그럼 넌 모하니? 진짜 백수?"

"난 무역회사 다녀. 좀 큰데. 사무실은 여의도."

"HJ해운쯤 되려나." 

"오오 귀신이네. 보영인?"

"난 경제신문 기잔데, 우습게도 문예부. 사진 필요한 거 아니면, 재택근무하건 뭐하건 일하는 척만."

"요즘엔 무슨 기획인데?"

"미술관 특집. 근데 내부 촬영 금지래서, 건물 전경이나, 사람 얼굴만 찍구, 내용은 보내주는 대로 거의 올려."

"어 근데 경제신문? 그럼 여의도?"

"그지 뭐."

 

"오빠 심심할테니까, 나 태워다 줘."

"껄떡 거리는 치들이 많아서.... 동거남이라고 해 가지고 다 떨궈야지. 하하하"

"넌 결혼 한번도 안 했니?"

"그게 남자 친구가 너무 많아서, 고르지를 못하고 밍기적 대다가 하나둘씩 가삐대."

 

"어디 가든 길이니?"

"오빠 따라 나오는 길."

"모닝 커피 한잔? 커피는 집에 가서 먹구, 편의점에서는 뭘 사지?

"경제 신문?"

"흐흐흐 창피하게 스리"

"저 여기 신문 하나랑, 샌드위치 두개요.이 신문 맞아? 또 귀신놀이?"

"가자."

"일단 보영이네 집이 낫겠다. 아직 지은이 의중을 몰라서."

"그래 뭐 내가 커피 내려 준대두."

흔한 네스 커피 머신. 그러나 난 써본적은 없다.

신문을 뒤져 보영이 이름이 붙은 기사를 찾아본다... 문화부라...

"없는데?"

"거기 미술관 광고 있자너. 그거 내가 찍은 사진. 카피도"

"짤리지만 않으면 신의직장이네."

"풉... 표 두장 있는데 보러 갈래. 오늘 저녁에."

"어? 지은이한테 물어 보구."

'바보 오빠야. 너 곧 이혼 당해. 물을 필요 없어.'

"그래"

 

IV

 

"바쁘다며 왠 전화?"

"그냥 스탭 식사시간."

"내용증명으로 합의이혼신청서 라는 거 보냈어."

"야 뭐가 그리 바빠?"

"긴 말은 나중에 하고, 그거 등기라서, 수린씨가 받구 싸인해야 하거든?"

"..." 

"물어보니 2-4시에 도착할 거래. 그 때 수린씨랑 집에 좀 있어줄래?"

"어후 싫어."

"그냥 말동무나 하루 해주라. 술도 좀 사다놔. 수린씨 참이슬만 마셔."

"그럼 잠깐 얘기해 줄게. 해담 엔터라고, 좀 큰데인데, 거기서 어플라이 들왔어.

 나포함 4명까지. 난 가고 싶었던 기회라서 놓칠 수가 없어. 됐지? 이해할꺼야.

 축하해 달란 말은 안할게.

 그 봉투 안에 어떻게 하면 되는지 다 써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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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띨렁~"

"어 왜?"

"이따 미술관 가는 건 다음에 가고 나랑 마트 가자.

 뭐 좀 많이 살거라서. 차 필요."

"퀵배송 이런거 시켜."

"싫어. 수린 오빠가 남편 흉내 좀 내줘."

"흐이긍, 넌 애가 왜 아직도 철이 없니?"

'그건 오빠가 철이 없는 거야'

"잠깐 마스크 쓰고 나올게."

"내차는 아반테. 은색." '지은이는 랜드로버 이게 말이 되냐고?'

 

"카트 밀어야지. 자갸.."

"그래."

 

참이슬 한박스, 백산수 6개, 조거 파란 맥주 한팩.

오징어 한마리, 새우깡 하나, 컨디션 두개.

컵라면 신라면 작은거 두개. 펩시콜라 1.5리터 하나.

각종 하드 여섯개, 북어포 하나.

끝~

 

"오늘 무슨 날이늬?"

'오빠 지은이 첨 만난 날.'

"그냥 술 먹구 싶어서."

"배달 이시죠?"

"아니예요. 남편이 힘이 좋아서. 씨익"

 

"근데 이걸 왜 우리집에 놔?"

"남은 건 가져 가믄 될꺼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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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띨렁~" "등깁니다" 

"신분증 가지고 오세요. 네에?"

"여기 싸인 좀."

"그럼 수고하세요. 우체국 택배도 좋습니다."

일반 봉투보다 다소 크게 느껴졌다.

"뭔데 오빠" 보영이는 세수를 하고 나오던 참.

"몰라 이상한 게 왔어 보낸이가 지은이인데? 

 나중에 보고 일단 커피한잔 하자 믹스커피 아이스"

"저기 기계 있자나."

"몰라 어떻게 쓰는지."

"얼음은 있구?"

"어. 모르겠는데? 잠깐만... 없네. 니네꺼 퍼뜩 갖구 와라."

"됐어 내가 아이스커피 타 올게. 후다닥."

나는 궁금하던 차에 보영이가 자리를 비켜주니 내 방으로

서류 봉투를 가지고 들어가 읽어 본다.

이혼하겠다는 소리. 미안하다는 소리. 

"보영이 넌 알고 있었구나?"

"오비이락."

잠깐만. 소주 한병을 들이키더니,

카톡을... 지은이에게. 등기 받았고, 내일 결정해서 답해줄게.

            나도 그동안 고마왔어.

속이 부대껴서, 화장실에 가서 손가락을 넣어 일단 개운다.

많이 먹으려면 이러구 시작하는 거다.

"수린씨. 괜찮아?"

"안 괜찮지 뭐."

"너두 알아서 마시렴. 소주 좀 마셔봤네. 필요한 안주는 다 있어 골고루"

"그냥 들은 대로 산거야."

"소주는 다 내꺼니깐, 넌 맥주 마셔."

나는 아이스커피잔에 물을 부셔 마시고, 소주 잔으로 하기로 했다.

"아 좋다. 이 맛이쥐"

 

V

 

맥주를 마시며, 수린씨를 쳐다 보는데,

눈을 맞출 자신이 없었다.

여섯병째. 

웃올을 벗는다 런닝 셔츠 바람인데,

팔에 문신이 있었다. 라일락 하고 해바라기.

무슨 의미인 지 물어보려는데.

"과일이 먹고 싶네. 복숭아 같은거."

 

"어어 가져올게."

 

"수린씨 가져 왔어 복숭아. 엄청 달아."

"수린씨?"

화장실에 있어?

노크노크 열어 보았더니 세면대에 핏자국이.

문신을 도려낸 거 같다. 너무 놀라서.

마구 불러 댔는데,

눈에 보이는 건 펄럭이는 커텐과 열린 베란다 창문.

시퍼렇게 검은 하늘에 눈이 오기 시작했다.

눈이 뿌리니 머리에서 깨져 나온 핏빛이 더욱 선명하게

내 가슴에 맺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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