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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현재

풍성낚시터에서

by MDabsurd 2021. 8. 19.

I

 

"빵빵 빵바라방"

 

랩에 있기에 좀 우울한 날이다.

토요일 저녁. 학교 밖으로 혼자 나왔다. 물론 들어가 봐야 하지만.

학위를 받으려면 이거저거 할 게 많은데, 

아직도 수학 문제 안 풀려서, 끙끙~

안 풀린다기 보다 모순이 생겨 버렸다.

내 전공은 핵물리학인데, 뭐 실험할 환경이 없으니,

소위 이론물리학질.

 

"빵빵 빵라바방"

 

뒤를 돌아 보기도 귀찮아 길 구석으로 걷는데,

왜 따라 오며 저러는지.

 

"빵빵 빠라바랑"

 

'여기 주택가여 시끄럽게 굴지 말고 그냥 가라. 나 피죤해'

 

어쩌시꾸 이젠 헤드라이트 질이다.

"뭔데."

옆으로 다가서서 차창을 내리더니, "수린씨 얼렁타"

"저 누구세요? 전 잘 모르는데."

"그냥 타라믄 타 이 쪼다야."

악몽이 되살아 난다. P보영.

절대 친한 사이 아니었다 2년 수료할 동안 대화한 것도 서너번 될까 말까.

하여튼 난 보영이를 "왕싸가지", 보영이는 나를 "찌질이 쪼다"라 불렀다. 

 

그런 애가 몇년 만에 날 만나러 올 이유가 있을리 없는데,

뭔가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강타했다.

 

"삼춘.. 저 차 대놓구, 옷좀 갈아 입구 올게요. 그동안 얘랑 좀 놀아 주실래요?"

"어? 누군데?"

"지지리 궁상 쪼다라고 제가 짝사랑 하는 늠이예요."

"에혀~ 처음 뵙겠습니다. K수린이라고 하고, 절대 보영이랑 안친합니다."

"어 그래 밤낚시 말구 술이나 마시지. 내가 한잔 하던 중인데. 무슨 술을 줘야 하려나."

"아무거나 주세요. 소주, 막걸리 술 다 가리는 거 없습니다."

"아차. 명함 드릴게요. 어르신들은 또 명함 좋아하시더라구요."

"난 없는데.... 나두 하나 팔까? 명성그룹가... 뭐라고 해야지?"

"조경팀장 하시면 되시겠네요."

"어 맘에 드는군." 

"소주가 있긴 한데, 참이슬 괜찮아?"

"네에. 근데 모기가 많아서 안에 있는게 좋겠습니다."

"혼자 계시면 안 심심하세요?"

"뭐 요즘엔 컴퓨터가 좋아서, 바둑,장기 이런거 두고, 눈 아프면 라디오듣고 그러다 보면 하루 훌쩍"

"전 원래 깡소주 좋아하는데, 삼촌님은 착한 보영이 시켜서, 안주 좀 만들어 달래서 드세요 속 버립니다."

"내가, 보영이한테? 짤릴 일 있나 허허허, 나 원래 회장님 운전기사였어. 그런데 어느날인가 회장님이 여기에서 일보라고 하더군.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다고. 퇴물이 되니깐, 운전이 시덥지 않았나 봐."

"에에 여적 40대시면서 무슨 그런 말씀을. 참 못된 회장이군요."

"아냐. 나 저쪽에 가면 내 텃밭두 있어. 고추라도 따서 안주할까?"

"멀어요?"

"금방인데... 함흥차사니깐 다녀오시죠. 술도 깰꼄. 쉬야두 좀 하고."

"고추는 손이 많이 간다든데."

"텃밭이래도 농사일에 손 안가는 게 있는 지는. 가세나 좀 매울걸?"

뜨헉! 눈물이 난다 살인적인 통각이 혀를 스친다.

"맵지?"

애꿎은 소주로 진화작업. 

그러구 저러구 하다가 장기판을 펼치신다.

아무래도 보영이가 두시간도 넘어 안 나오니,

신경이 쓰이는 듯. 

"차 포 떼 드릴게요. 대신 봐주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군."

"내기 걸어요. 만원빵. 쫄리시죠?"

"자네 나중에 돌려 달래기 없어. 장기에서 블러핑이라.."

결과는 수린이 승.

수린이는 손바닥을 내밀고 씨익 웃는다. 

"아이고 우리 삼촌님 야바위 패에 걸리셨네. 줄건 주셔야죠?"

"잠깐 기다려 지갑 찾구 있자나."

"지갑을 안 가져 나오셨죠? 그 수법 다 알아요. 하하하"

분명 여기 뒀는데 서랍장을 여는데, 가족 사진이 보였다.

은영이가 있네? 

"삼촌님. 세시간 지났으니, 전 가볼게요."

"그르게 보영이가 이런 애가 아닌데."

"그런 애 맞아요. 또 골탕 먹인 거죠."

"앞으로는 근처에 오지 말라고, 전해 주세요."

"그럼 건강하세요. 술 너무 많이 드시지 마시고."

자리를 털고 일어 나더니, 꾸우벅 90도 인사를 하고

바로 돌아서서 걸어 갔다.

"여긴 택시 안 와. 안 온대두..."

 

"보영아. 세시간씩 안 나오면 어떻게 해. 뭔 일 있니?"

"갔어?"

"응"

 

보영이는 세시간 내내 울고 있었던 거 같았다.

 

II

 

된장 비빔밥.

학교에서 좀 떨어져 있고, 외진 데 있는 분식집 주메뉴다.

처음 갔을 때는, 그냥 냉면 사발에 따뜻한 밥을 퍼담고,

식은 된장 찌개를 내주는데, 주로 나오는 밑반찬은 단무지 무침.

나머지는 라면, 떡볶이, 오무라이스 정도?

된장 비빔밥이라는 메뉴는 이 집에서 처음 먹어 봤다.

"이거 어떻게 먹나요"

"그냥 비벼먹어. 고추장통 옆에 있으니깐 원하면 그거 넣고."

라면이 1500원 하는데,

돼지고기 부스러기 들어간 된장찌개 밥 자그마치 1500원.

푸하하하하 

게다가 다른 애들은 일단 휴일에 과외 받는 건지

학교에 잘 오기도 하지만, 절대 만날 일이 없다.

특히 P보영 같은 애는 올리가 없지. 

그래도 옆학교 야구부 애들은 떼거지로 오기 일쑤라,

일단 합석은 기본이었다.

그런데 그날 사고가 터졌다.

야구부가 자리를 점거한 가운데, 내 자리 앞자리는

아직 빈 상태. 이때 들어선 애가 J은영이.

"야 은영아. 독서실에는 없든데, 언제 나왔니?"

"어? 아 30분 됐나?"

"여기 아는 줄 몰랐다."

"뭐 그냥 떡볶이 먹구 싶어서. 밖으로 막 손을 흔든다. 보영아 여기."

끝끝내 나가서 불러온다.

'어후씨.'

"아 이런 분식집두 있네. 신선상고 야구부 전용인가?"

"아냐. 여기 싸고 다 맛있어."

"그건 믿어 보겠지만, 어쩜 얘는 밥두 딱 이런데서 먹니?"

"보영아. 너어 또 왜 그래. 사과하기로 했자나."

"이런 후즐근한 데서 냄새나는 밥 먹는 모습 보니까 그럴 마음이 싹 사라졌다. 난 갈게."

"보영아! 수린아 미안 미안....."

난 그 맛있는 된장 비빔밥을 신선상고 야구부 애들의 따가운 눈초리와 조롱을 들으며 먹어야 했다.

계산하고 나올 때 주인 아저씨한테 "정말 죄송합니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어 괜찮아."

문 열고 나오는데, 신선늠 하나 결국 내뱉는다. "저 쪼다 시끼. 남자 망신이다."

 

난 얼굴 마주 치는게 싫어서 대학로를 한바퀴를 돌아 댕겼다. 금년만 버티믄 된다.

금년만...

 

물론 시간은 흘렀다. 우리반은 문집을 하나 남기기로 했는데,

글 하나 쓰고, 각자 몇가지 질문에 대답. 그리고 자율로 한페이지씩 이름 적어두고 아무 얘기나 한마디씩 해주기.

{

1. 학교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 오늘. 왕싸가지 안봐도 되니깐.

...

5. 당신의 꿈은? 한 분야 끝까지 공부해보고, 그담에 마당 있는 집에서 애 둘 낳구 와이프랑 행복하게. 부모님두 가능하면 같이. 마당에 개도 한마리. 그냥 화목한 가정집.

}

 

다음날.

"석준아 혹시 은영이는 어떻게 지내니? 갑자기 궁금해서."

"그러구 보니, 너 은영이 결혼할 때 안 보이더라. 몰랐구나?"

"누가 행운의 주인공인데?"

"모르는게 나을 지도 몰라."

"말해봐"

"L지은이 오빠. 이름은 뭐 기억 안나고. 은영이 결혼식날 동기애들 진하게 한잔 했자나. 날도둑 놈이라고."

"후후후. 그러구 보니, 은영이가 그런면이 있었네."

"근데 말야. 재작년에 둘다 교통사고로 죽었어."

"아 그렇구나. 알았어. 다음에 전화할게. 나 보스가 콜이다."

"어 그래."

 

III 

 

그렇게 그렇게 겨울이 되었다. 어차피 시간은 흐르니깐.

"형" 

"응? 나 졸린데."

"오늘 아침에 선생님 기분이 완전 굳. 철벽 디펜스였어요?"

"아니"

"이런 결론이 났는데, 내 실력으로는 못 푸니깐, 우연히 읽어 보시는 학우님들이 도와 주시길 빕니다."

"디펜스를 어케 잘 할수가 없자나.?" 

"뭐 선생님들이 질문을 별로 안 하시고, 농담 따먹기를 하시긴 하더군. 프하하하하하~"

"오늘 진영이가 선생님 방 문이 열려 있어서, 들었는데, 전화기에 대고, 아 뭐 수린이가 워낙 잘한 것도 있지만 내가 지도를 잘한 거 아니겠나. 프하하하하하~나 아무래도 내년에 자연대학장은 되지 않을까 싶네만"

"..."

"여튼 형은 어떻게 선생님 웃음 소리 모창까지 하는 지.."

"어허." "금요일밤은 싫겠고.. 목요일 저녁에 메뉴 정해놔. 나 오늘은 조퇴다 호호호~"

"선생님이 나 찾으면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 갔다고 해."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이유는 하나 또 있다.

선생님의 앙숙네 논문을 제대로 까버린 거. 버클리 색꺄 니네 틀렸어. 멜렁~

이런 식으로 풀이한다면, 풀리긴 하는데, 난 모르겠네. 멜렁~

 

정말 졸음이 한번 크게 몰려 오는데, 카톡...

핸드폰 꺼버리고, 책상에서 엎어져서 자다가

이제 집에가서 마저 자야겠다. 

 

핸펀을 켰더니, 풍성 낚시터 아저씨 즉 보영이 아버지.

아무래도 카톡은 좀 그런거 같아.

전화를 걸어본다.

"얘 아버님. 좀 자느라 메시지를 늦게 봤습니다."

"지금 당장 좀 봐야 겠네."

"무슨 일이신데요?"

"저녁 7시까지 마을회관으로 찾아 와야해. 이번에는 장기로 밟아주지."

"아저씨 저 백수 아녜요. 명함 드렸자나요."

"그래서 못 온다구?"

"아니오 갑니다. 가요.."

 

정말 어이없는 부녀라고 생각한다. 막무가내. 부전여전.

"왔습니다 왔어요. 위스키 그나마 집동네 가자 주류점에서 제일 비싼거 두병."

"헉. 안녕하세요. 어르신들?"

"아저씨. 설명 좀."

"이 동네에서 장기 좀 둔다 하는 아재들 전부 모인거야"

"1:5. 세명은 광팔거구." "한명은 구라겐세이 전문."

"이번 내기는 내가 동네의 명예를 걸고, 밭 100평을 걸겠네."

"그럼 저는 뭘 걸어야 하나요?"

"우리 보영이 한번 더 만나주기."

"밭 500평."

"그럼 하룻밤."

"콜"

"일단 위스키루다가 목 좀 축이구 해야지. 겐세이 아저씨 등장"

1:9 의 위력?

수퍼에 다가 있는 술 다 가져오라 해두라우.

어르신들. 제가요 주당입니다 주당.

"한잔 받으시지요. 연배는 제가 잘 모르니깐 그냥 고스돕 방향으로 올려도 되겠지요."

"하모."

"따라 버리시면 반칙패예요... 아셨죠?"

장기는 무슨. 난 필승의 의지가 있는 걸. 흐흐흐. 보영이 하룻밤~ 

1:9로 돌아도 한분씩 차례대로 전사자 속출.

"다 전사하셔도 아버님은 드셔야 될 텐데. 땅 500평~"

"잠깐 나 전화 한통만." "경호원은 반칙입니다. 반칙 이마을에 사시는 분만."

"경호원 부를 생각 없어. 우리에겐 특급 구원투수가 있거덩."

"보영이 우리딸 마을회관으로 와라. 우리는 할만큼 해따." 소곤소곤.

"장기는 두셔야 안 될까요?"

"잠깐만 기다려봐. 구원투수 몸 푸는 중이여."

"P회장 난 이제 가볼래. 너무 졸려서. 집에나 가려는지."

"네에 고맙습니다. 다음에 뵙죠."

"어르신들 다 나가시고, 문이 열리는데, 보영이."

"이건 반칙이죠."

"이 마을 살고, 자네만큼 똑똑하고 장기 잘 둬. 됐지?"

"선배 초 잡으시고, 먼저 두세요."

"푸. 그러지 모."

"나 잔 비었네."

"네에?"

"아빠 이방 너무 덥지 않아요? 나 좀 벗구 둬야겠다. 너어무 더워서."

"한잔 받으시고요. 자네도 한잔."

"선배 나두 한잔 줘야쥐."

"보영아 술마시니깐 이마에 땀난다 화장 지워지는거 아니니? 더우면 더 벗어."

 

"고만하세요. 항복 제가 졌습니다."

"표정이 왜 그래?"

"아닙니다. 진건 진거죠."

"그럼 난 다음에 봄세."

"하룻밤 잘 지내게. 울 수린군."

"너희 아버님 생각은 안하니?"

"어? 울 아빠는 좋아하시든데?"

"됐고. 여기서 하룻밤 네 이야기 들으면 되는 거지? 해뜨면 땡이니깐. 얼렁 해."

"수린 선배. 솔직히 말해 봐. 나 좋아하지. 아니 좋아해 왔지?"

"아니."

"두번 안 물을거야."

"그럼 내가 선배 어떤 기준을 충족시키면 나랑 결혼할 생각은 있어?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아니"

"자리 옮기자 솔직히 여기 너무 춥다."

"그러든지."

"밖에 엄청 춥더라."

밖으로 나서자, 보영이는 춥다며 팔짱을 끼고 매달려 안았다.

"낚시터로 가자 보여줄게 있어."

"아 추운데, 거긴 또 왜?"

"잠깐 조오기 좀 있어봐. 그때 아빠랑 술마시던 곳. 모기 싫다고."

"또 세시간 자다 오게?"

"아니. 3분 있다 나오면 될꺼야 시간 재고 나와."

"분부대로."

시간 되서 나온 수린은 낚시터 빙판 위에 보영이 외투 같은게 보여.

뛰어 가 봤다.

'엉성하게도 파 놨네. 아이고 보영아'

대강 후다닥 벗고 구멍으로 들어가려는데

너무 좁다.

119 전화질. 무조건 일루 오세요 빙판 아래 사람이 얼어죽고 있어요.

여기 P회장님 풍성 낚시터.

아 몰라 밀어 넣어.

'안 보인다.'

'머리를 써야 돼.' '잠수함은?

눈을 감고 몸을 맡긴다.

'보영이는 찾았어. 구멍은 어디?'

'나 숨이 없는데.... 남은 숨이라도... 물속에서 키스라.'

최대한 빙판 아래로 붙어서 하늘을 봐야지. 

달이든 별이든 보일꺼야. 

'보영아 올려 줄게.' 수린이는 물속에서 얼추 보영이 몸을 무릎까지 들어 올려 걸었다.

'맥이 없다. 미안해 실패했나 보네. 119가 와서 살려줄 지 모르니 놓지 말고 버텨봐'

수린이는 모든 힘이 풀려 가라 앉기 시작했다.

 

6개월 후.

 

"환자분?" "의사 한명이 몇명의 의사를 부른다."

"엄간. P악신 50, L디아프린 100 주사 해주세요."

"보호자 분한테는 제가 이야기 하죠."

 

"P회장님"

"네에 네에."

"따님이 일단 눈을 떴는데, 일단 계속 격리 유지할 거고요"

"네에."

"검사 중에 시술이 이루어질 수도 있으니, 그 때마다 동의서 싸인을 

 해주셔야 해서 자리 비우시면 안됩니다. 네에."

"와이프랑 제가 병원에 있으니깐 이 자리에 없으면 전화 주세요."

"네에. 일단 다행입니다."

 

2주일 후

환자분? 이름 기억하세요? K수린.

나이는요? 29세.

여기는 병원이예요. 병원 아시죠?

3개월 후

이름은요? P보영

나이는요? 29세.

아버님,어머님이랑 면회 하실래요? 아니오.

 

간호사님.

얼음의 벽 저편에서 웃고 있었어요.

별빛이 떨어져 내렸는데, 벼가 풍성하고 누렇게 익은 논처럼

찰랑이고 있었죠. 

앞으로 낚시터는 못 갈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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